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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프로젝트/번아웃

번 아웃

2015년 30살이던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번 아웃을 경험했다


고3시절 딱히 되고싶었던게 없었던 나는 남들이 그러하듯, 아무 대학의 아무 과에 지원했다. 그 시절의 '나는 어떻게 잘 살것인가' 보다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를 생각했었다. 그래도 지금은 살아야겠기에 직업을 구해야했고 이왕이면 내 적성에 맞는 일을 하기 위해 다양한 직업을 경험해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원하는지 알기 전까지 잠시 생각을 유보해놓고 나에게 맞는 일을 찾는데 집중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20대인 10년을 직업을 찾는데 투자했다. 


다양한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무언가 텅 비어있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열정을 다해서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까? 일을 하는데 열정이 일어나지 않았고 자연스레 회사가기가 싫었고, 회사에선 소극적이었고, 일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일쑤였다. 마치 나중을 위해 힘을 아껴놓는 것처럼. 


그렇게 내 인생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없고, 그 어떤 신념도 없이 껍데기로만 살다보니 대한민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신념이 내 속을 채워갔다. 젊은 나이에 성공해야하고, 집이 있어야 하며, 차를 가져야하고, 놀 줄도 알아야 하며, 여자도 많이 사귀어 봤어야 하고, 모든 일에 능숙하게 대해야 했다. 마치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듯, 남보다 적은 연봉에 속상해 했고, 그런 세상을 비난했다.


아직 생각이 자라지 않고 몸만 자란 어린아이였던 나는 20대 마지막 직업으로 전문직을 경험해보기로 햇고, IT계열이 전문직다워보였고,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학원에 등록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열심히 배웠다. 학원에서 나는 모범생이었고 많은 자격증도 땄다. 6개월동안 정말 열심히 해서 수료했지만 내가 갈 수 있는 직장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는 곳도 계약직이거나 IT경력도 인정해주지 않는 OP직이었다. 첫 번째 만난 벽이었다.


"그래 내가 조금 성급하게 생각해서 잘 알아보지도 않고 IT를 정해버렸지만, 공부도 열심히했고 이왕 이렇게 된거 여기서 살 길을 찾아보자"라고 결심하고 네이버 계약직을 버리고 시스템 엔지니어로 성장할 수 있는 작은 OP인력회사를 들어갔다. 들어가서도 암울한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에서 치르는 시험을 합격하면 시스템 엔지니어가 될 수 있었기에 거기에 모든걸 걸고 열심히 일하며 공부했다. 그리고 시험에 합격했다. 당연했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난 열심히 했으니까. 


하지만 운이 없게도 회사가 사정이 좋지 않았고 일을 수주받지 못해 내가 가서 배울만한 곳이 없었다. 그렇게 OP도 아니고 엔지니어도 아닌 허송세월을 파견지역에서 6개월보내면서 어떻게든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공부했다. 뭘 공부해야하는지는 몰랐다. 그냥 아무거나 잡히는대로 공부했다. 본사에서도 내가 남는인력으로 노는게 안 좋아보였는지 본사로 나를 불렀다. 하지만 본사에서도 내가 할 일은 없었고 자연스레 잡일을 맡게 되었다. 나는 온갖 잡일에 동원됐다. 그래도 좋았다. 뭐라도 할 수 있어서. 문제는 개중에 부장이 시키는 일들은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불행히도 부장은 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나는 내가 모르는 일들을 아무런 도움도 얻을 수 없는 곳에서 혼자 해결했다. 막막했고 답답했다. 속앓이를 했지만 도움을 청할 곳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무력감이 점점 나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두 번째 벽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더욱 더 몰아부쳤다. 전보다 더 과하게 공부를했다. 쉬는 것은 사치였고 한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책에도 답은 없었다. 그리고 이미 내 속을 채웠던 사회의 기준들이 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29살에 난 월급 150이었고 집이나 차는 당연히 없었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실패하면 더 이상 신입으로 취직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았고 엔지니어로서의 나는 너무나 부족했다. 더구나 열심히 해도 다가갈 수 없었다. 도저히 잘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런 무력감의 압박속에서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래도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여기서 그만두면 정말 끝일 것 같아서 바로 다른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리고 한 신생회사와의 면접에서 "30살이면 너무 늦었는데"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불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고, 그대로 멘탈이 무너져버렸다. '도대체 뭐가 늦었다는거지?' '살 날이 아직 50년은 남았는데 도대체 이 미친 세상은 뭐가 늦었다는거지?' 아무리 속으로 외쳐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나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그냥 실업자가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실업자가 되었다. 


이후 매일 채용사이트를 둘러보지만 그럴때마다 무력감만 느낄 뿐이었고, 그럴때마다 마치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한 동안 집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의자와 한 몸이 된 것처럼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번 아웃이었다. 아무런 의욕도 솟지 않았고 아무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계속 고개를 들었지만 내가 이렇게 된 원인을 차근차근 분석해보았다. 원인은 나에게 무리한 일만 시켰던 부장도 아니었고, 내가 IT를 잘못 택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생각없이 열심히만 한 것도 원인은 아니었다. 내가 진정 되고 싶고,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유보해두고 어린아이인채로 세상의 기준을 받아들인 것이 문제였다. 내 인생에 대한 아무런 신념이나 소신도 없이 그저 남들이 세운 기준에 나를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원인을 알아도 나의 몸은 이미 무력감에 절어있었고 과민성대장증후군만이 내가 장기가 아직 붙어있음을 느끼게 해줄 뿐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너무 몰아부쳤고 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고 이제 좀 숨돌릴 여유가 생겨서 이렇게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 내 블로그에 글이 많이 올라오지 않았던건 블로그에 흥미를 잃은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절어있는 내 몸을 추스르기 위해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스트레스 정복은 아직 진행중이다. 그리고 혹시 나와 같이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극복해나갔으면 좋겠다. 적어도 이렇게 힘든 경험을 하는 사람이 본인 혼자는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